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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심부름하다 죽을 뻔한 썰

때는 중2여름, 어느날 늦은 저녁이었다.


당시 나는 부모님이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아주 성실하게 해내곤 했는데, 그것은 내가 효자라서가 아니라 심부름을 통해 일당으로 받는 용돈이 내 유일한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서 쓰게 함으로써 돈의 소중함을 알게 하자는 부모님의 방침이었는데, 결국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입과 지출 내역도 매번 가계부에 적어야만 했다.


여튼 그날은 무려 500원을 받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었다.


그런데 음식물 쓰레기통에 가기 전, 그 앞에 놓여있던 일반쓰레기 봉투 뭉치 안에서 조그만 빨간 빛이 깜빡거리는 거였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그때의 나는 누군가가 폭탄으로 날 죽이려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꼭 중2여서 그런게 아니라 불혹의 40대가 봤어도 충분히 꺼림칙하고 가기 싫었을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폭탄이나 위치추적기 등의 그것과 같던 불빛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 아파트 쓰레기장 구조는 가운데 일반쓰레기 봉투를 모아 버리고 그걸 빙 둘러가며 ㄷ자로 종류별 분리수거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면 안쪽 구석까지 들어가서 음식물용 쓰레기통에 내용물을 쏟아붇고 반대쪽 구석에 비닐봉지를 버리고 나와야 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목숨을 거는 행위였기 때문에 한동안 망설였었다.


뒤를 돌아봐도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커녕 경비아저씨도 안보이셨고, 계속 그 앞에 서 있는다는 건 내 자신이 너무 쫄보처럼 느껴졌기에 보다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봤다.


'그래 이 아파트단지 한복판에서 사람하나 죽이려고 폭탄을 설치할 리가 없지, 후딱 버리고 나오자!' 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면서 신경은 곤두선 상태로 쓰레기를 버리고 종종걸음으로 도망쳐 나왔다.


당연하게도, 쓰레기봉투는 터지지 않았고 그날 밤 어떠한 폭음도 듣지 못했다.


그게 장난감이었는지 다른 무언가였는지는 몰라도 누가 어쩌자고 그런 걸 배터리와 함께,

전원도 켜진 채로 봉투에 버려놓고 갔을까.

 

십중팔구 어떤 괴짜 놈의 짓궃은 장난이었으리라.

하지만 이건 내 인생 중에서 가장 무섭고 겁먹었던 기억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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